[그여자의 소설]
[조선일보] 1995-11-10 (문화) 뉴스 19면 796자
올해 서울연극제에서 남녀 주인공 모두가 연기상을 받았던 극단 민예의 「그 여자의 소설」이 강남으로 자리를 옮겨 앙코르 공연중이다. 12월31일까지 압구정동 실험극장에서 계속되는 「그 여자의 소설」은 극작가 엄인희씨가 여성해방문학 「또 하나의 문화3집」에서 발표했던 「작은 할머니」를 다시 다듬은 작품. 「작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두번째 여자를 일컫는 말로 본처가 아기를 낳지 못해 구해온 씨받이 후처를 의미한다. 무대는 해방되기전 부천의 김씨댁. 김씨부인이 딸 하나를 낳고 10년동안 아들이 없자 작은 댁을 구한다. 씨받이로 들어온 작은 댁은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해 큰댁의 마음을 오히려 아프게 하는데…. 남자연기상을 받은 공호석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뻣뻣한 전통적인 남편역을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절절하게 소화해낸다. 백구두에 백바지, 거기에 빨간 양말을 신은 그 시대 최고의 멋쟁이로 등장하다가도 노인성 치매에 시달리는 고약한 모습도 보여준다. 오랜 연기 경력을 보상받듯 당당히 여자연기상을 따낸 이용이는 작은댁역을 맡아 순수하고 선한 우리 아낙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 본처와 남편사이에서 애매한 곡예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운명적인 인생이 담담히 그려진다. 여기에 전형적인 우리네 여인의 한스런 연기를 펼치는 백경희 강선숙 등이 가세하고 있다. 「피고지고 피고지고」 「불 좀 꺼주세요」 등의 연출을 맡았던 강영걸이 보여주는 관객과의 호흡맞추기 진가가 발휘되는 무대다. 화 오후 7시30분,수∼금 오후 3시7시30분,토 오후 36시,일 오후 3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