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전쟁
공연일시 ㅣ2000. 6. 16 - 6. 18   
공연장소 ㅣ 동해문화예술회관
공연소개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살포한 고엽제는 30여년의 시간을 넘어 현재 우리 주변을 떠돌고 있다. 참전용사의 정신질환을 유발하고 기형아 출산으로 가정을 피폐하게 하는 악마적 모습을 드러낸다. 실제로 지난달 4일 대구에 살던 40대 후반 고엽제 환자가 독극물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은 고엽제의 망령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 있나를 보여준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극장에서 지난달 21일 개봉돼 오는 3월5일까지 공연되는 극단 민예(대표 이태훈)의 ‘그들만의 전쟁’(유진월 작·강영걸 연출)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두 제대군인의 대화를 통해 고엽제 후유증 문제를 세밀하게 들춰낸다. 대리전쟁에 젊음을 바쳤던 퇴역군인의 초상은 다름아닌 피부병, 정신병 등 11개 질병에 시달리고 2세까지 희생당하는 뼈아픈 상처밖에 남지 않았다. 경제건설의 바탕이 된 32만명의 피와 땀은 심각한 후유증으로 사회적 소외를 낳을 뿐이다.


73년 창단이래 대부분 사회성 짙은 주제의 작품을 선보인 극단 민예는 원숙한 연기와 안정된 조명작업으로 베트남전 고엽제 문제를 최초로 무대에서 부각시킨다. 장씨(유영환분)와 김씨(최승일분)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으로 홀로 살아가며 가끔 술잔을 기울이는 사이다. 참전당시 시체처리 작업만 했던 장씨와 민간인 살해의 기억을 가진 김씨는 어느날 술잔을 사이에 두고 귀국후의 기억을 더듬는다.


연극은 장씨와 김씨의 기억속을 각각 드나드는 통로로 정밀하게 비춰지는 조명을 활용한다. 조명은 등장인물의 기억을 외과의사의 메스로 잘라낸듯이 정확하게 파내 관객에게 던진다. 주변을 철저히 배제한 채 무대 왼편과 오른편에서 장씨와 김씨의 기억을 각각 불러오는 조명에 관객들은 몰입이 한결 수월하다.


장씨는 결혼까지 하지만 끔찍한 피부병에 반신불수인 아들을 낳는다. 아들은 성장한후 신병을 비관하다 목숨을 끊고, 딸은 스스로 나쁜 유전적 요소가 내재돼 있다는 공포심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다 가출한다. 성불능인 남편탓에 이웃 남자와 바람을 피우던 아내는 끝내 미쳐버린다. 다리 신경이상으로 결혼하지 못한 김씨는 전투에서 민간인을 살해한 경험때문에 환청에 시달리며 대인공포증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악몽같은 과거를 되뇌던 둘은 딸의 행복한 결혼에 대한 기대, 아내의 귀환에 대한 희망, 친구와 의지하며 따뜻하게 살아보리라는 전망을 서로 확인한다. 고엽제 제조회사들에 대한 배상소송을 가리키는 ‘그들만의 전쟁’을 마지막으로 언급하며.